(물론 저같은 말단에게 직접 날아온건 아닙니다.. 단지 누군가가 재전송 해 줬을 뿐..)
이게 읽다보니 내용이 참 좋더군요. 지인분들을 위해 함 올려봅니다.
뭐, 내부 문서 공유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좋은 내용을 공유하자는 의미니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고, 또 정말 걱정이 안되는게..
어차피 내 블로그엔 아무도 안오니까..
------------------------------ 이하 원문 ------------------------------
스승의 날을 제정할 당시, 여러 날을 놓고 갑론을박 하다가,
세종대왕이 태어난 날로 하자는 데 만장일치가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국민'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유행인데,
세종대왕이야말로 '국민스승'이라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던 셈입니다.
세종대왕의 치적은 아시다시피,
집현전과 한글창제, 조세제도 개혁, 법전정비, 해시계·물시계 등 과학기술 진흥,
국악의 체계화, 4군 6진의 북방영토 개척, 농사직설 편찬 等
이루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 연구의 권위자,한국학중앙연구원 박현모 교수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이 세종에 대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단 32년 밖에 안 되는 짧은 재임기간 동안
이룰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박현모 교수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대답을 대신한다고 합니다.
세종시대에 황희정승과 함께 명재상으로 쌍벽을 이루던
정승 허조(許稠)는 말년에 이르러,
'나는 평생 스스로 국가의 일을 내 일이라 여기며 살아왔다'고 자주 말했다 합니다.
황희, 김종서, 정인지, 박연, 장영실...
세종 치하에는 분야별로 인재가 많았습니다.
세종은 그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과감하게 기용하였고,
그들은 "나라의 임금은 세종이지만, 나라의 일은 나의 일"이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진심과 역량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쏟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직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참으로 부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가끔은,
'아랫사람들이 조금만 더 자기 일처럼 해주었으면'하는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다들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세종은 어떻게 아랫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도록 만들었을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인재들에게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심어줄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아닌 세종대왕의 독특한 회의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평범한 방법으로? 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평범한 기본을 비범하게 운영한 것이 세종 리더십의 핵심 비결이라고 합니다.
그럼 세종대왕의 회의법은 어떠했을까요?
6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회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① 충분한 토론과 공감 * 의논하자! (세종의 취임 첫 일성)
세종은 책을 좋아하고 공부를 많이 한 왕으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세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 세종과 토론이 가능한 수준이 되는 학자는
변계량 정도 밖에 없었고, 이것이 집현전을 강화하게 된 배경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똑똑한데다 왕이니만큼,
어떤 일이든지 명령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세종은 요즘말로 치면 '끝장 토론'을 제안합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고, 자신감이 없으면 힘든 일이었겠지요.
세종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도 토론으로 정했지만,
그 과정에서 논리와, 설득과, 리더십을 통해
처음에 반대했던 신하들까지도 목표에 동참하고 한 배를 타게 만들었습니다.
회의를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심어주는 과정으로 십분 활용했다는 것이지요.
세종실록에 보면 이러한 토론과정을 거쳐
자신의 생각을 바꾼 신료들의 사례가 곳곳에 등장합니다.
세제개혁에 있어 황희가 태도를 바꾸어 새로운 개혁안 실행의 주체가 되거나,
재임 후반기 국정의 대리운영을 보좌하는 첨사원 제도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이사철이 왕에게 설득당해 그 기구의 책임자로 일했습니다.
② 적극적인 참여 유도 * 절실강직(切實剛直)하게 이야기하라!
(세종실록 7년 12월 8일)
"지나간 옛날을 두루 살펴보니,
태평한 시대라도 임금의 옷을 잡고 강력하게 간언한 자가 있었다.
또 그 말한 바가 사람의 마음을 두렵게 하여 움직이게 하였다.
지금은 과감한 말로 면전에서 쟁간하는 자는 보지 못하였으며,
또 말하는 것이 절실강직하지 않다.
어째서 지금 사람은 옛 사람 같지 못한가?
의논하라고 내린 일도 한 사람이 옳다고 하면 다 옳다고 말하고,
한 사람이 그르다고 말하면 다 그르다고 말한다.
한 사람도 중론을 반대하여 논란(論難)한 자가 없다."
조선 건국後 태종때까지 정치적 격변을 거치다 보니
관료들은 보신을 위해 왕의 면전에서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세종이 추구하는 토론과 공감의 회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세종은 그래서 끊임없이 말끝마다 '경들의 의견을 말해보라'고 하여
신료들을 토론에 끌어들였으며,
정무토론의 경우에는 '다사리('모두다 사뢰다=아뢰다'라는 뜻) 회의방식'을 도입하여
모든 참여자들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문화도 만들어 갔습니다.
③ 좋은 의견에 힘 실어주기 * 황희 말대로 하라!
세종의 회의법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적중이지(適中而止)'라는 말이 있습니다.
질문을 던지고 자유롭게 토론을 오가게 한 다음 지켜보다가
적절한 시점에 토론이 마무리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생각이 다 다르고 자기 주장들이 있는 상황에서는
결론없는 회의가 지루하게 계속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로 황희 정승이 마무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결론이 대체로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세종은 그의 의견에 힘을 실어 자연스럽게 토론이 끝나게 한 것입니다.
실제로 세종실록에 '황희 말대로 하라'라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황희 정승은 '검은소 누렁소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느 편을 들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나누게 한 다음
어느 정도 토론이 이루어지면 그야말로 적중이지(適中而止),
한 방향으로 결론을 유도하는 기술이 또 하나의 비법이었습니다.
④ 집단사고(Group Think) 방지 * 허조는 참 고집불통이다! 허나...
앞서 말씀드렸던 정승 허조는
대쪽재상이라는 명칭의 어원이 되었을 정도로 사심없고 청렴한 스타일에
보수적이고 신중하며 자기관리가 탁월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10년 이상 이조판서를 지내면서 철저한 인재검증은 물론
한 번 발굴한 인재를 보호하는데 온 힘을 쏟으며
세종시대의 인재활용을 측면 지원한 정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회의 때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허조는 끝까지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종실록에도 '허조는 참 고집불통이야'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세종은 그런 허조를 배제하지 않고
계속 회의에 참여하게 하고 끝까지 그의 의견을 경청했으며,
그가 제기한 문제점이 해결된 이후에 그 정책을 시행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집단사고에 의한 오류도 방지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을 사전에 점검할 수도 있었습니다.
"임금이 현명하면 신하가 강직하다"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런 허조는 임종에 이르러서
"간하면 행하시고, 말하면 들어주시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임금과 신하가 서로의 충심을 알아주고 공감했기 때문에
우리 역사상 빛나는 지혜의 시대를 함께 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5월 15일은 세종대왕 탄신 61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창제로만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힘,
회의가 아니라 토의를, 지시가 아니라 공감을,
일방이 아닌 쌍방의 의사 소통을 추구했던 리더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세종대왕이 이렇게 훌륭한 리더십을 보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태종의 셋째 아들로 어렵게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항상 훌륭한 왕의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긴장과 위기감으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답니다.
얼마전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이 참 감명 깊게 다가왔습니다.
'성공의 반은 죽을지 모른다는 급박한 상황에서 비롯되고
실패의 반은 잘 나가던 때의 향수에서 비롯된다.'
임원 여러분 역시
하루하루의 업무와 치열한 경쟁 속에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럴수록 세종대왕과 같은 긴장과 위기감을 가지고
아주 평범한 기본적인 원칙을 비범하게 실천해 나간다면
훌륭한 리더로서 자리 매김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도 매년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라는 의미를 넘어
우리 역사의 큰 스승이자 성공한 리더의 표상인 세종대왕에 대해
또 우리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기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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